큐레이팅에 관한 번역서 출판을 준비하면서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2014년초 Contemporary Art Journal에 기고했던 글인데, 온라인 미술관은 제외하고 대부분 여전한 화두인 듯 하다. 눈에 띄는 오타 몇 개 수정해서 올려본다.

 

큐레이팅을 위한 큐레이팅다양한 가능성을 위한 연구로서 큐레이팅

큐레토리얼(curatorial)담론의 등장은 현대미술에서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한다. 전통적으로 큐레이터는 문화유산의 관리인이자 수호자로서 전문가의 역할을 수행했다. 1793년 최초의 근대적 개념의 미술관인 루브르 미술관이 개관했고, 왕, 귀족, 교회 등 특정 권력층의 소유물로 여겨졌던 예술작품은 문화유산이자 공공의 문화적 재산이라는 개념으로 전환되었다. 큐레이터는 미술관에서 공공재인 컬렉션을 보존하고, 연구, 해석, 전시하는 전문적 관리인의 역할을 했고, 미술관의 작품은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대중이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일은 과거 예술후원자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향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던 당시 혁명적이었다. 이처럼 예술을 향유하는 주체가 확장되면서 예술작품을 재현(representation)하는 맥락과 체계로서 전시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었다. 1867년에 근대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에드아르 마네(Edouard Manet)가 전시는 예술가가 수입을 창출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더 많은 신작을 만들 수 있게 독려하고 유도하는 필수적 체제라고 말했다(1)는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이미 20세기 이전에 전시가 예술과 대중을 잇는 형식으로 기능하기 시작했고,미술관의 관리인이었던 큐레이터에게 전시를 만드는 역할의 비중이 서서히 커졌을 것이라 추정한다.

하지만 큐레이터가 예술의 무대 위 중심적인 인물로 부상한 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다. 현대미술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기존의 제도로는 이를 재현할 수 없게 되었고, 새로운 전시 문화가 등장했다. 전시는 대중과의 소통을 이룰 수 있는 영역이자 창조적 실험의 영역으로 여겨지며 그 맥락과 체계가 다각화되었고, 공공기관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큐레이터 뿐만 아니라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가 나타났다. 특히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과 같은 독립 큐레이터는 제도를 넘어서는 실험적인 전시를 기획하여 새로운 큐레토리얼 패러다임을 창출하고,전시 작가(exhibition-author)라고 불리며 독창적인 큐레토리얼 실천(practice)을 수행했다. 제만처럼 전시를 예술 실천의 매체로 활용한 새로운 큐레이터 상(像)의 등장은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예술을 재현할 수 있는 큐레이팅, 큐레이터가 수행하는 일, 큐레이터십에 관한 담론의 장을 열었다.

선구자적 큐레이터의 실천을 계승하면서 나타난 큐레이팅에 관한 담론은 지난20여 년 전부터 급속히 확장되고 있다. 이 담론의 장에서는 큐레이팅이 무엇인지, 큐레이터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큐레이팅은 어떠한 실천(praxis)를 해야 하는지, 큐레이팅으로 어떤 지식과 프로덕션을 만들 수 있는지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큐레이팅에 관한 논쟁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에는 큐레이팅을 위한 큐레이팅에 관해서 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큐레이팅에 관한 담론은 팽배해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 글은 큐레이팅에 관한 수많은 쟁점들 중에서 최근5년간 두드러진 몇 가지 주요 쟁점과 특징을 살펴보고, 큐레이팅에 관한 담론이 열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간략하게 논해 보려 한다.그리고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논의에 국한되지 않고, 큐레이팅에 관한 담론이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서구권의 쟁점들을 포함하여 다루고자 한다.

자기 성찰적(self-reflexive)인 큐레토리얼 담론

우리가 목격하는 큐레이팅에 관한 수많은 논의와 쟁점은 큐레이팅의 자기 성찰적인 특징에서 비롯된다. 이는 큐레이팅의 대상인 예술이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깨어있도록 촉구하는 예술가의 성찰의 결과물이기에 가지게 된 필연적인 특징이다. 따라서 큐레이팅에 관한 담론은 다양한 큐레이팅의 행위를 자기 반영적,자기 성찰적으로 다각도로 논의하고, 규정하려 하고, 규정하려는 시도를 다시 부정하는 열린 형태의 프로덕션을 지향한다.앤드류 랜톤(Andrew Renton)은 이러한 큐레이팅에 관한 담론이 디스플레이의 방법이나 미술관의 역사(들)을 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확장된 실천의 영역에 관한 것이라 말한다(2).다시 말해, 큐레이팅의 대상이 오브제로 제한되지 않고, 예술의 실천 방법과 프로덕션 전체로 확대되고, 큐레이팅에 관한 쟁점 역시 때로는 전시의 형태로 실현하는 실천에 관한 것을 넘어 큐레이팅의 과정에 관한 연구와 실험에 대한 것으로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그 예로 지난20여 년간 큐레이팅에 관한 다양한 서적들이 발간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국내에서도 『큐레이팅의 역사』, 『큐레이팅이란 무엇인가』, 『큐레이터는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가』와 같은 번역서가 출판되거나 한국 큐레이터의 인터뷰를 담은 『큐레이터 본색』과 같은 서적이 저술되었고, 큐레이팅에 관한 담론이 활발한 서구권에서는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이 쓰여지고 있다(3). 그렇지만 큐레이팅에 관한 급진적 논의는 앞서 언급했듯이, 큐레이팅할 대상이 배제된, 큐레이팅을 위한 큐레이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큐레이팅에 관한 담론의 기저에 있는 자기 성찰적인 특성을 고려한다면,계속적으로 양산되는 큐레토리얼 논의는 기존 제도와 질서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성찰의 도구로서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 기대한다.

큐레이팅을 가르칠 수 있는가

현대미술에서 큐레이터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큐레이팅과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이, 큐레이터나 큐레이팅에 관한 많은 책이 출판되고, 늘어나는 큐레이터 지망생의 수만큼 큐레이팅을 가르치는 기관도 급증하고 있다. 국내에는 큐레이터 학과가 개설되어 있는 학교가 소수이지만, 전세계적으로는 1990년대 초 영국 RCA(Royal College of Art)와 골드스미스 대학(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이 큐레이팅 학과를 설립한 이후로 수많은 큐레토리얼 프로그램(curatorial program)이 만들어지고 있다.

큐레토리얼 프로그램의 증가와 더불어 발생한 여러 논의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과연 큐레이팅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미국 CCS Bard(The Center for Curatorial Studies at Bard College) 프로그램의 디렉터인 폴 오닐(Paul O’Neill)은 ‘큐레이팅은 절대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는 주장은 큐레토리얼 교수법을 마치 단순한 지식과 테크닉의 전달로 치부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4). 비슷한 맥락으로, 골드스미스 대학의 큐레이팅 학과 교수인 앤드류 렌톤은 큐레이팅이 학과목이라기 보다 실천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교육의 방식으로는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한다(5). 말하자면, 큐레이팅은 전시를 조직하는 테크닉을 넘어 전통적인 방식과 기존의 역사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실천적 활동이기에 큐레토리얼 프로그램을 과거의 교수법으로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큐레토리얼 프로그램의 커리큘럼은 변화하는 큐레토리얼 실천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논점이다.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큐레이팅 석사 학위를 취득한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사례로 들자면, 2년 동안의 과정에서 큐레이터가 하는 실무에 관한 테크니컬한 기술을 배우거나 전통적인 방식의 일방향적 강의를 수강한 적이 없다. 큐레이팅 학과의  동료 학생들과 함께 수업의 주체가 되어 우리가 관심을 가진 큐레토리얼 역사, 미학적, 철학적 주제, 당시의 주요 쟁점 등을 선택하여 일련의 세미나를 통해 논의하고, 같은 단과 대학의 예술가나 함께 일하고 싶은 예술가들과 다양한 형태의 프로덕션을 만드는 것이 주된 과제였다. 이처럼 전통적인 교육 형식이 아닌 열린 담론을 펼칠 수 있는 플랫폼에서 큐레이팅을 예술 실천의 방식으로 ‘배웠다’. 그러므로 ‘큐레이팅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가르친다’는 개념을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큐레토리얼 프로그램 역시 큐레이팅과 큐레이터의 역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큐레토리얼 담론의 형태의 하나라 생각한다.

신 미술제도주의(New Institutionalism) 

큐레이터가 현대미술에서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의 창조자로 조명받게 된 배경의 중심에는 독립 큐레이터의 활동이 있다. 주로 미술기관이나 기존 제도로부터 독립적으로 일하는 독립 큐레이터는 다양한 방식으로 프로덕션을 만들면서, 행정가나 관리인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큐레이터 상을 수립했다.

하지만 매력적으로 보이는 독립 큐레이터의 실상은 이상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독립 큐레이터는 큐레이팅을 통해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고, 과거1990년대에는  독립 큐레이터의 실험적이고 전문적인 전시를 수용하던 대규모 미술기관은 이제 블록버스터 전시로 더 많은 관객을 불러들이고, 더 많은 수입을 창출하는 데 집중한다. 그 결과, 지난10여 년간 많은 독립 큐레이터들이 미술기관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이는 ‘신 (미술)제도주의’를 초래했다(6).

새로운 문화의 기수로서 활동하던 독립 큐레이터들은 미술기관에서 일하며 제도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사회적 실천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미술기관의 상업적 목적과 타협을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옌스 호프만(Jens Hoffmann)은 “아마도 큐레이터들은 큐레이팅이 단지 미술관 컬렉션에서 작품을 시대에 뒤쳐진, 질서 정연한 방식으로 디스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하여 미술기관의 익명성으로부터 다시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할지도 모른다(7)”고 말한다.

서구권에서 나타난 이러한 경향은 최근 국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김현진, 김장언처럼 독립 큐레이터로 활발히 활동하던 중견 큐레이터들이 일민미술관을 거쳐 아르코미술관에서,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오랜 시간 독립적으로 활동한 큐레이터들이 미술제도를 큐레이팅의 매체로 활용하여 어떠한 프로덕션을 선보일지 지켜볼 만하다.

큐레이팅의 범위 

신 미술제도주의와 함께 큐레이팅에 관한 논의에서 화두로 떠오른 쟁점은 미술제도 혹은 미술기관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해야 하는가이다. 과거 큐레이팅은 전시 제작(exhibition making)의 새로운 모델을 찾는데 중점을 두었지만, 오늘날에는 전시를 만드는 것을 넘어 렉처, 토크, 워크샵, 레지던시, 출판, 스크리닝, 퍼포먼스 등 전통적으로 부수적인 프로그램이라 여겨졌던 활동으로까지 큐레이팅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 다양한 문화 장르간 나타나는 융합과 예술의 간학제성(interdisciplinarity)을 반영하고, 우리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쟁점과 현상을 재현하려는 큐레이터의 사회적 실천의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더불어 화이트 큐브 안의 오브제로 전시할 수 없는 새로운 예술을 선보이기 위해 등장한 재현 방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같은 현상은 ‘파라큐레토리얼(the paracuratorial)’이라 불리기도 하면서, 기존에 오브제-관객-공간(art object-audience-space)으로 한정되었던 큐레이팅의 대상에 관한 개념에 도전한다. 따라서 ‘파라큐레토리얼’에 관한 논의는 기존의 질서와 제도에 저항하는 큐레이팅의 한 움직임으로서 큐레이팅에 관한 담론을 더욱 다각화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라 기대한다.

그렇지만 다양한 형태로 선보이는 프로그램을 소위 ‘이벤트’라 부르며 단순히 관객을 불러모으고, 관객 수를 늘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전시와 ‘이벤트’를 양극화시킬수록 전시와 예술작품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미술관의 다양한 ‘이벤트’가 난립하는 최근의 동향을 보면, ‘전시’에 관한 옌스 호프만의 글을 다시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전시라는 형식 속에 고정되어 진열된 오브제가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고, 역동적이거나 재미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전시를 보는 일은) 대단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아니고, 관객에게 인내 뿐만 아니라  어려워 보이는 예술적, 큐레토리얼 논의에 참여해야 하는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전시가 재미있어서는(entertaining) 안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전시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가 되어서는 안된다. 큐레이팅이 잘 된(well-curated) 전시는 쉽게 이해할(digestible)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전시를 보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시를 보는 일은 궁극적으로 교육적이고, 지적 자극을 주고, 영감을 주는 경험이 되어야만 한다(8).”

디지털 시대의 큐레이팅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 다룰 큐레이팅에 관한 쟁점은 디지털 시대의 큐레이팅이다. 사진기술이 발달한 1936년에 이미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그의 저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기계적 복제의 가능성이 원작의 권위를 떨어뜨려 왔고, 예술작품의 ‘아우라(aura)’에 대한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경험이 대량 복제 가능한 예술을 통해 집단적인 경험으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했다(9).클릭만으로도 이미지의 복제가 가능한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에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앞장서서 작품의 이미지를 디지털화하여 온라인에 배포한다. 수많은 미술기관이 온라인과 SNS를 통해 관객과 작품의 이미지를 공유하고, 라익스미술관(Rijksmuseum, https://www.rijksmuseum.nl)이나 게티(Getty, http://search.getty.edu/gateway/landing)와 같은 기관은 컬렉션의 고화질 이미지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하기도 한다. 2011년에 시작된 구글 아트 프로젝트(Google Art Project, http://www.google.com/culturalinstitute/project/art-project?hl=ko)는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박물관으로의 버추얼 투어(virtual tour)를 가능하게 하고, 국내 상당수의 미술관의 전시를 KAP(Korean Artist Project, http://www.koreanartistproject.com)의 가상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물리적으로 가기 힘든 장소에 있는 작품을 쉽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대중이 예술에 접근하기 쉽게 도와준다. 또한 SNS나 블로그를 통해 작품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관객들의 ‘참여’는 전통적인 예술의 감상 방법에서 변화하여 궁극적으로 예술을 새롭게 인식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큐레이터는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변화의 흐름에 발맞추어 어떻게 큐레이팅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큐레이팅은 예술을 미디어에서 범람하는 수많은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소비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복제된 작품의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 예술의 경험은 작품이 놓여진 맥락과 그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끝으로 하랄트 제만이 앤드류 렌톤에게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제만은 자신이 실체(flesh)를 직접 보지 못한 작품을 전시에 포함시킨 적이 없다고 한다(10). 물론 모든 게 변화하고 있고, 우리는 온라인을 통한 협업과 큐레이팅이 가능해진 시대에 살고 있지만,제만의 큐레토리얼 원칙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    Edouard Manet, “Catalogue des Tableaux de M. Edouard Manet exposés Avenue de l’Alma en 1867, Paris 1867,” quoted from Oskar Bätschmann, Ausstellungskünstler. Kult und Karriere im modernen Kunstsystem(Cologne: DuMont, 1997). p10.

2)    Andrew Renton, “Forms of Practice: Curating in the Academy”, The Exhibitionist, No.4., June 2011.

3)    지난 20여 년간 서구권에서 발간된 큐레이팅에 관한 서적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Evelyn Beer and Riet de Leeuw, eds., L’Exposition Imaginaire: The Art of Exhibit- ing in the Eighties (‘s-Gravenhage, SDU uitgeverij, ‘s-Gravenhage: Rijksdienst Beeldende Kunst, 1989); Bruce Altshuler,The Avant-Garde in Exhibition (New York: Abrams, 1994); Jeffrey Abt, A Museum on the Verge: A Socioeconomic History of the Detroit Institute of the Arts 1882–2000 (Detroit: Wayne State University Press, 2001); James Putnam, Art and Artifact: The Museum as Medium (Thames & Hudson, 2001); Sarah Cook, Curating New Media(BALTIC, 2002); Mary Anne Staniszewski, The Power of Display: A History of Exhibition Installations at the Museum of Modern Art (Cambridge: MIT Press, 2001);  Miwon Kwon, One Place After Another: Site-Specific Art and Locational Identity (Cambridge: MIT Press, 2002); Paula Marincola, ed., What Makes a Great Exhibition? (Philadelphia: Philadelphia Exhibitions Initiative, Philadelphia Center for Arts and Heritage, 2006); Tobia Bezzola and Roman Kurzmeyer, eds., Harald Szeemann: with by through because towards despite: Catalogue of All Exhibitions 1957–2005 (Zürich, Vienna, and New York: Edition Voldemeer and Springer, 2007); Paul O’Neill, ed.,Curating Subjects (London: Open Editions / Occasional Table, 2007); Hans Ulrich Obrist, A Brief History of Curating (Zurich: JRP/Ringier, 2008); Shamita Sharmacharja, ed., A Manual for the 21st Century Art Institution(Koenig Books, 2009); Karsten SchubertThe Curator’s Egg: The Evolution of the Museum Concept from the French Revolution to the Present Day. (Ridinghouse, 2009); Dorothea von Hantelmann, How to Do Things with Art (Zurich: JRP/Ringier, 2010); Paul O’Neill, Charles Esche, and Mick Wilson, eds., Curating and the Educational Turn(Open Editions/de Appel, 2010); Kitty Scott, ed., Raising Frankenstein: Curatorial Education and Its Discontents (Cologne: Koenig Books, 2011); Hans Ulrich Obrist, Hans Ulrich Obrist: Everything You Always Wanted to Know About Curating But Were Afraid to Ask(Sternberg Press, 2011); Terry Smith, Thinking Contemporary Curating(ICI, 2012); Paul O’Neill, The Culture of Curating and the Curating of Culture(s)(MIT Press, 2012)

4)    Paul O’Neill, “The Curatorial Constellation and the Paracuratorial Paradox”, The Exhibitionist, No.6., June 2012.

5)    Andrew Renton, “Forms of Practice: Curating in the Academy”, The Exhibitionist, No.4., June 2011.

6)    Jonas Ekeberg, ed., New Institutionalism(Office for Contemporary Art Norway, 2003)

7)    폴오닐 엮음, 『큐레이팅이란 무엇인가』, 변현주 역, 현실문화연구, 2013, 216쪽

8)    Jens Hoffmann, “A Plea for Exhibitions”, Who Cares? 16 Essays on Curating in Asia(Para/Site Art Space / Studio Bibliotheque, 2010)

9)    Walter Benjamin,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Penguin Books, 2008)

10)  Andrew Renton, “Forms of Practice: Curating in the Academy”, The Exhibitionist, No.4., June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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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Open Editions과 네덜란드 de Appel에서 큐레이팅에 관한 담론을 다룬 서적 『Curating Research』가 2014년 12월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Curating Research』는 큐레이팅에 관한 선집의 세 번째 시리즈로 Paul O’Neill과 Mick Wilson이 에디팅했습니다. 이전 시리즈로는 큐레이팅에 관한 다양한 논평과 사유를 담은 『Curating Subjects』(2007년 발간), 큐레이팅과 교육 간의 상호관계에 관한 글을 수록한 『Curating and the Educational Turn』(2010년 발간)이 있습니다. 첫 번째 선집 『Curating Subjects』는 『큐레이팅이란 무엇인가』(한글판)란 제목으로 현실문화연구와 사무소에서 국내에 공동 출판한 바 있습니다.

『Curating Research』는 동시대 큐레토리얼 환경에서 리서치의 역할과 기능을 Marion Von Osten, Sheikh Simon, Liam Gillick 등 여러 큐레이터, 이론가, 작가가 다각도로 조망하는 글을 수록하고 있으며, 제가 쓴 글 ‘Evolving Archive: Asia Art Archive’도 실렸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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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ditorial
위태로운 노동, 큐레이팅 / 현지연
People
김성연_내적시선의 예술장이 필요합니다 / 심상용
Issue
‘아트스타코리아’는 길인가? / 심상용
지금당장 이 불합리한 구조를 고치자/인터뷰:홍태림 / 임국화

Special Feature _허위의식과 저항 사이의 큐레이팅
큐레이팅을 위한 큐레이팅?다양한 가능성을 위한 연구로서 큐레이팅! / 변현주
저항의 피크노랩시로서의 큐레이터십은 어떻게 가능한가? / 심상용
-인터뷰:채은영
미디어아트 큐레이팅을 이야기하기‘위한’ 한 방법 / 임산
정치적 큐레이팅은 가능한가? / 김종길
-인터뷰:김인선
독립기획자와 자족적 글쓰기 문화 / 반이정
큐레이팅 인큐베이팅, 참여 기획자 인터뷰 / 편집부

Review
정연두 개인전,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전 / 심상용
<여가의 기술-언제나 느긋하게>전 / 현지연
부산아트쇼, <2014 AR TOWN 대안공간협의회>전 / 심상용
임영주 개인전, <삼신뎐>전 / 임국화
<예스퍼 유스트:욕망의 풍경>전 / 이보나
<뮌-기억극장>전 / 김혜경
손혜민, 존리어든, <성장교본>전 / 이빛나

Book Review
편집부

큐레이팅이란무엇인가_S

폴 오닐 엮음 | 한스 오브리스트, 오쿠위 엔위저 외 지음 | 변현주 옮김

펴낸이: 김수기 | 펴낸곳: 현실문화/사무소 | 펴낸날: 2013년 3월 4일 | 가격: 20,000원

크기: 140*215mm | 쪽수: 384쪽 | ISBN: 978-89-6564-070-7 03600

이 책은 ‘큐레이팅’에 관한 다양한 논평과 사유를 모은 선집이다. 20세기 후반 현대미술에서 전시의 맥락과 체계가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한 인식은 급진적으로 변화해왔다. 이에 따라 오늘날은 ‘큐레이터의 시대’라 해도 무방할 만큼 현대미술에서 큐레이터가 중심적인 인물로 부상하였고, 큐레이팅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도 부쩍 커졌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큐레이터와 갤러리스트, 아트 딜러가 수행하는 상이한 역할을 모호하게 여기거나 혼동하기도 하고, 심지어 큐레이터와 함께 협업하며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예술가조차도 큐레이터를 단순한 보조자나 행정업무가로 여기기도 한다. 여전히 ‘큐레이터가 하는 일’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고, 커지는 관심과 더불어 큐레이터쉽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책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큐레이팅이란 무엇인가(원제: Curating Subjects)』는 큐레이팅의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를 아우르며 큐레이터와 예술가, 비평가 등 다양한 필진이 에세이, 인터뷰, 리뷰 등 다양한 형식의 글로 동시대의 광범위한 큐레토리얼 담론과 큐레토리얼 실천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필진들은 동시대에 큐레이팅 현장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나 광주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의 감독을 맡았던 오쿠위 엔위저를 비롯해 동시대 전 지구적 미술계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해오고 있는 큐레이터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미술 분야뿐만 아니라 장 리어링과 같은 건축 분야의 큐레이터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그룹 마테리알이나 리엄 길릭처럼 작가로 활동하면서 큐레이팅을 하는 작가-큐레이터들의 글도 포함되어 있어서 동시대 큐레이팅의 다양한 면모를 읽게 한다.

내용적으로 이 책은 큐레이터의 역할에 논의, 작가-큐레이터의 모델에 대한 논의, 큐레이팅과 비엔날레와의 상관성, 전시 맥락과 예술 재현의 상관관계, 큐레토리얼 실천으로서의 담론적 전환, 큐레이팅의 실험성, 프로젝트의 열린 형태로서의 큐레이팅 등 큐레이팅과 관련된 포괄적인 논의들을 담고 있다. 큐레이팅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만 결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지 않으며, 텍스트 또한 비평적 에세이에서부터 다양한 형태의 인터뷰와 대화, 이론적 탐구, 큐레이팅에 대한 역사적인 개관을 조망하는 글, 큐레이팅과 관련해서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역사적인 전시에 대한 리뷰 등 다양한 글쓰기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 목차

1. 인터뷰: 애니 플레처 vs. 폴 오닐

2. 중개인: 매개에 관한 대화의 시작

3. 그룹 마테리알의 80년대 세 가지 활동

4. 불안정한 미술제도

5. 하찮은 무력? 큐레이션, 독립성, 협업에 관한 대화

6. 전시를 만드는 일: 60년대 후반 전시 미학에 관한 기록

7. 바우하우스 캘커타

8. 탐험하는 것일까? 아니면 교육하는 것일까?

9. 미래들: 내일을 위한 실험과 테스트

10. 부적절한 장소들을 큐레이팅 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펭귄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

11. 정전을 넘어선 큐레이팅

12. 기능적인 유토피아를 위해…? 입장에 관한 리뷰

13. 큐레이팅의 어떤 경향

14. 비엔날레 가이드

15. 망각에 반대하는 운동

16. 해석의 정치

17. 구성적 효과: 큐레이터의 테크닉

18. ‘새로운’ 뉴욕현대미술관에 관한 거대한 환상

19. 새롭게 만드는 일

20. 큐레토리얼 계기와 담론적 전환

역자 후기

색인

필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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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후지와라 

2013. 2. 2 – 3. 24

아트선재센터 2층

 

주최: 아트선재센터

주관: 스페이스 포 컨템포러리 아트

기획: 김선정/사무소, 변현주

협력: 영국문화원

 

사이먼 후지와라는 국제적으로 주목 받는 젊은 작가로 국내에서는 2012년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건축가인 일본인 아버지와 무용수인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이먼 후지와라는 자전적인 삶을 반영하는 정체성과 성적 취향에 대한 문제에서부터 인류학, 역사∙사회∙정치적 범주 등을 아우르며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창작한다. 후지와라가 만든 이야기는 소설, 연극, 퍼포먼스, 설치, 강연 등 다양한 형식의 매체로 재현되고,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이야기 속의 다양한 인물-극작가, 소설가, 인류학자, 에로 배우 등-로 분하기도 한다.

이번 《사이먼 후지와라》전은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그리로 한 아버지의 아들로서 사이먼 후지와라의 정체성을 조명하는 작품들을 통해 후지와라가 만든 이야기 속 다양한 시공간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뮤지엄 오브 인세스트(The Museum of Incest)>(2009-)는 사이먼 후지와라가 인류의 근친상간의 역사와 기원을 조사하면서 수집한 자료와 자신의 일본인 아버지와의 관계를 엮어 만든 이야기로 이루어진 설치와 영상 작품이다. 작가의 개인사에서 시작하여 인류학적 관심사로 확장된 이야기는 건축을 전공한 작가의 배경을 반영하면서 박물관의 형태로 선보여진다. 후지와라가 만든 박물관에는 성행위에 대한 사법 규제가 생긴 시기인 근대를 대표하는 유럽 인권재판소, 성적 행위에 대한 성서적 규제가 존재했던 중세 시대 자료, 모계사회였던 고대 이집트의 근친상간에 대한 기록 등 근친상간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포함한 다양한 내러티브가 전시된다. 또한 이와 함께 작가의 일본인 아버지와의 관계를 드러내는 이미지를 병치하여 인류와 가족의 이야기를 엮어낸다.

<재회를 위한 리허설(Rehearsal for a Reunion (with the Father of Pottery))>(2011-12)은 후지와라가 다도를 통해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던 그의 일본인 아버지와 재회한 이야기를 다룬 설치와 영상 작업이다. 다원적인 문화에서 성장한 작가는, 영국인이면서 아시아에서 성장한 영국의 대표적 도공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에게 문화적 동질감을 느끼고, 일본에서 아버지와 재회할 때 리치의 도예 워크샵을 재연하였다. <재회를 위한 리허설>은 부자(夫子)의 재회가 이루어진 공간을 무대적 설치로 선보이고, 이들의 재회를 재연하는 연극을 만들기 위한 리허설을 담은 영상으로 구성된다.

<거울 단계(The Mirror Stage)>(2009-)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의 글에서 차용한 제목으로 ‘거울 단계’는 어린이가 자아 이미지(mirror image)를 타인이나 다른 물건에서,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세계 안에서 찾는 과정을 설명한다. 사이먼 후지와라는 자신이 11살 때 영국의 화가 패트릭 헤론(Patrick Heron)의 추상회화 <수평의 스트라이프 회화: 1957년 11월 – 1958년 1월(Horizontal Stripe Painting: November 1957- January 1958)>을 본 이후에 자신이 예술가가 되고 싶고,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사건을 이 작품을 통해 풀어낸다. <거울 단계>는 작가와 11살의 작가를 연기하는 소년이 대화하는 영상, 헤론의 작품 복제 이미지로 만든 생활 용품으로 가득 찬 작가의 어린 시절 방을 재연한 설치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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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 Fujiwara

2013. 2. 2 – 3. 24

2F, Artsonje Center

 

Hosted by Artsonje Center

Organized by Space for Contemporary Art

Curated by Sunjung Kim/Samuso, Hyunjoo Byeon

Supported by British Council

 

Simon Fujiwara is one of the most successful emerging artists and was introduced to Korea at Gwangju Biennale in 2012. The son of a Japanese architect father and a British dancer mother, Fujiwara produces works that confront autobiographical aspects with subjects ranging from issues of identity and sexuality as well as the anthropological, historical, social, and political factors that impact on these constructions. The narratives he creates often transcend the boundaries between the private and public realm as well as those between reality and fiction. By manifesting these narratives through play, performance, installation, and lectures, among others, Fujiwara also adopts multiple roles such as artist, writer, novelist, anthropologist, or adult film actor.

Simon Fujiwara, the artist’s first solo show in Korea, invites viewers to experience the diversity of journeys Simon Fujiwara has created through his practice, by presenting the works which focus on his identity as an artist, human being and a son.

The Museum of Incest (2009-ongoing) is an exploration of incest as a phenomenon within the history of mankind as researched by Simon Fujiwara. Fujiwara inserts the story of his relationship with his Japanese father into this fictive architectural proposal for a museum. This act weaves Fujiwara’s personal narrative into an anthropological investigation of the development of mankind as well as landmark architectural structures. The museum presents historical narratives associated with incest, such as documents from the 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 establishing its jurisdiction over human rights cases involving issues of sexuality, the religious restrictions on sexual activities in the medieval period, and the practice of incest in matriarchal ancient Egypt. Through the depiction of the artist and his father, the concept of family, crucial to the existence of the current human population is woven into the history of incest.

Rehearsal for a Reunion (with the Father of Pottery) (2011-12) represents the reunion between Fujiwara and his distant father through a ceramics workshop. Due to his multicultural background, Fujiwara was able to closely relate to Bernard Leach, the “Father of British Studio Pottery,” who was also raised in Asia. This led the artist to re-enact Leach’s workshop when he reunited with his father in Japan. For Rehearsal for a Reunion, Fujiwara recreates the place of the reunion on a stage installation, onto which a video of the re-enactment of the event is projected.

The Mirror Stage (2009-ongoing) is a mixed media installation, which borrows its title from an essay by French psychoanalyst Jaques Lacan. The concept of the mirror stage refers to the phase when infants see themselves in a mirror image or other representation and are able to turn themselves into an object they can view outside themselves. In this work, Fujiwara portrays his encounter at the age of eleven with Horizontal Stripe Painting: November 1957- January 1958 by Patrick Heron. Fujiwara stated that this was a determining early experience in his realization of wanting to become an artist and of being gay. The Mirror Stage consists of the video of a conversation between Fujiwara and a young actor playing the eleven-year-old Fujiwara projected along with an installation of his childhood bedroom with Heron-inspired Ikea furniture.